[사진의 기억] 늙은 흰 말이 전하는 말

‘사랑한다 루비아나’, 2017년. ©박찬원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눈보라가 친다. 다른 말들은 모두 마구간으로 대피시켰다. 언제 죽어도 괜찮은 백마만 덩그러니 혼자 벌판에 남겨져 있다. 바람이 매섭다. 눈덩이가 늙은 말의 뺨을 때린다. 세월에 찌들어 벗겨지고 퇴색된 백마의 털과 피부가 흰 눈발, 바람, 구름과 어울려 하나가 된다. 머지않아 새로운 세상을 찾아갈 때는 이런 눈발을 타고 가는가 보다.’
늙은 백마를 수개월 동안 사진에 담은 사진가 박찬원의 작업노트 일부다. 그는 십여 년 넘게 하루살이, 돼지, 말, 젖소 등 동물들에게서 ‘생명의 의미, 삶의 가치’를 찾는 작업을 지속해 온 특이한 사진가다. 사진가로 활동하기 이전에는 대기업 CEO와 마케팅 전문가로 이름이 양명했다.
그가 늙은 백마 ‘루비아나’를 처음 만난 것은 제주도의 한 말 목장에서였다. 경주마로서 미국에서 5년간 경마장을 누볐던 루비아나는 은퇴 후에 경주마의 혈통을 이어갈 씨받이로 우리나라에 팔려 왔다. 여덟 마리의 새끼를 낳은 다음에는 새끼 낳는 역할마저 끝이 나서, ‘쓸모없는 말’이 되어 안락사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사진가는 루비아나를 처음 본 순간 찌르르 전율이 느껴졌다고 말한다. 말에게서 인간의 한 생애를, 아니 작가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고 한다. 안락사 대신 백마가 자연사 할 때까지 목장에서 생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목장주에게 청했다.
그 후로 루비아나는 작가의 친구였고 사진 모델이었다. 함께 있는 동안에는 둘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동물을 고찰하고 감정을 나누는 일은 범용한 일상을 넘어 그 동물의 세계로까지 내연이 확장되는 일일 것이다. 작가는 루비아나에게서 늙음, 죽음, 생명의 의미를 발견했다. 마지막 시간을 같이 보내며 조금씩 사라져가는 생명의 담담한 모습을, 자연과 동화되어가는 백마의 시간들을 사진과 글로 스케치했다.
그렇게 7개월의 시간이 지나서 루비아나는 다른 세상으로 떠났고, 말과 사람이 서로 교감하지 않았으면 찍을 수 없는 사진들이 우리에게 남았다. 작가는 이 사진 시리즈에 자신의 고백을 제목으로 삼았다. ‘사랑한다 루비아나’. 사진 속에서 늙은 흰 말이 전하는 말이 들려오는 듯하다.
박미경 류가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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